십자군 전쟁의 숨겨진 이야기: 성지보다 중요한 경제와 정치

성지보다 중요한 경제와 정치 (1) 십자군 전쟁(Crusades)을 떠올리면 대개 중세 기독교 세계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슬람 세력과 벌인 거룩한 전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떠오른다. 수많은 기사와 순례자들이 ‘성지 탈환’이라는 기치 아래 먼 길을 떠났고, 서양 중세사의 한가운데를 장식하는 대규모 전쟁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사건을 단지 종교적 열정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이 전쟁의 이면에는 때로는 더 중요한 경제적·정치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었다. 성스러운 목표를 내세운 전쟁 뒤에는 토지와 부, 권력과 상업 이권을 둘러싼 치열한 이해관계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2)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Urban II)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한 연설은 제1차 십자군 전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이는 ‘우리가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형제를 위협한다’는 방어적 성격을 띈 것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유럽 전역을 통합하고 교황권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분명하게 깔려 있었다. 성지 탈환에 대한 호소가 뜨거운 반응을 얻은 것은 단순한 신앙심 때문만이 아니라, 유럽의 많은 귀족과 기사들이 새로운 영토와 부를 노릴 기회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지역의 토지 부족 문제와 봉건적 질서 속의 한계를 돌파할 만한 ‘원정’을 갈망하고 있었다. (3) 십자군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세 유럽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세 유럽은 분권화된 봉건제도가 뿌리내려 각 지역 영주들이 자신의 영지를 자치적으로 다스리며, 중앙 권력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영주들은 기사들을 거느렸고, 기사들은 전투를 담당하며 영주에게 충성을 바치는 대신 토지나 봉급을 받았다. 그런데 인구가 늘어가면서 활용 가능한 토지의 한계가 드러났고, 많은 기사와 젊은 귀족들이 자신만의 새로운 영토를 소유할 기회를 찾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십자군 원정은 ‘성지 수호’라는 대의와 함께 새로운 정복지 및 경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