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쓰는 인연의 동화 ― 영화 <Vir Altyd> 평론
개요 🌺
<Vir Altyd>(“영원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프리칸스 로맨틱 드라마로, 한때 “세상에서 제일 친한” 소꿉친구였던 니나와 휴고가 10년의 공백 끝에 재회하며 벌어지는 두 번째 성장담을 그린다. 감독 이반 보타는 전작 <Pad na Jou Hart>에서 보여준 로드무비적 감성을 확장, “도피로서의 여행”과 “귀환 후의 책임”이라는 두 축을 병치한다. 작품의 주제는 명확하다. 🔄 “완벽한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가 시험될 때’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주인공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친구·지역사회까지 잔잔히 번져 간다.
주요 인물은 니나(도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완벽주의 예비 신부’), 휴고(세계 각지를 떠도는 포토저널리스트), 리티프(니나의 예비 신랑), 그리고 니나·휴고에게 부부 관계의 거울이 되어 주는 중년 커플 폴 & 베치이다. 공간은 고향 마을 파를(Paarl)의 포도밭과 모리셔스의 ‘러브 아일랜드’ 리조트로 갈라지며, 감독은 고향=규범·의무·기억, 여행지=욕망·자유·인식 전복이라는 시청각 코드를 반복적으로 대조한다. 핀홀 카메라 같은 따뜻한 광량, 드론으로 찍은 밀키웨이 해변, 그리고 신부 드레스의 아이보리 톤은 니나가 집착하는 ‘완벽한 사진’ 욕망을 상징하며, 반대로 휴고가 들고 다니는 낡은 35mm 카메라는 “흠집 난 진실”을 들춰내는 도구가 된다.
결국 <Vir Altyd>는 “결혼식이라는 일회적 이벤트”를 해체해, 관계 유지·용서·재시작을 일상의 장기 플랜으로 제안한다. 나아가 부모 세대의 갈등(요한·크리스텔)과 노부부의 작별(폴·베치)을 병렬 배치해 세대별 사랑의 생애 주기를 보여 줌으로써, 로맨스 장르에 드문 “가족 드라마적 깊이”를 확보한다.
줄거리 📜
영화는 파를의 고즈넉한 포도밭 마을에서 시작된다. 웨딩 플래너로 일하며 ‘로맨틱 샷’ 수집이 취미인 니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꿈꾸어 온 “완벽한 하루”를 실현하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그녀의 약혼자 리티프는 성공한 변호사 집안의 장남으로 ‘신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는’ 듬직한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식 당일, 촛불 세리머니가 어긋나고 리티프가 서약문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순간부터 불안의 균열이 인장처럼 늘어난다. 결국 🏃♂️ 리티프는 꽃길 대신 주유소 방향으로 도망치고, 니나는 120명의 하객·프렌치 레이스 드레스·두 종류의 프로테아로 장식된 연회장을 남긴 채 벙벙한 얼굴로 선 채 “웨딩은 끝나지 않았다”라며 음식을 나른다. 이 난장 속에서 오랜 친구 휴고가 등장한다.
니나와 휴고는 10년 전 터졌던 사건―둘이 함께 고향을 떠나려다 휴고만 홀로 사라진 날―을 다시 떠올린다. 니나는 “두 번째 상처”를 막기 위해 휴고를 밀어내지만, 어머니 로넬과 동네 사람들의 눈길은 오히려 둘의 “숨겨 둔 서사”를 자극한다. 밀려드는 수치심과 분노를 달래지 못한 니나는 미혼 친구 미셸의 충동 제안에 휩쓸려 “허니문이 취소된 모리셔스 티켓”으로 휴고와 함께 떠난다. 리조트에 도착해 보니, 골프광 벤과 ‘사랑 언어’를 실험하는 마리키, 그리고 황혼 재혼을 꿈꾸는 폴·베치가 ‘관계 리트릿 체험단’처럼 묵고 있다. 이 낯선 공동체 안에서 니나는 매일 하나씩 주어지는 ‘커플 챌린지’를 어정쩡한 “가짜 신혼 부부” 휴고와 수행하면서, 결혼보다 먼저 서로를 이해해야 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리티프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부모의 압박으로 니나를 찾아 모리셔스로 날아온 그는 공항·해변·리조트 레스토랑을 돌며 허세 어린 “세컨드 프러포즈”를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남편이란 지위가 아니라 동반자적 내면이 필요하다”는 진실이 드러나고, 니나·휴고·리티프 삼각관계는 갈등의 정점을 찍는다. 베치가 재발한 암으로 쓰러지면서,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하루일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니나와 휴고의 망설임을 지운다. 휴고는 📷 자신의 카메라 필름에 남은 두 장을 니나에게 건네며 “우리 둘만의 장면을 찍고 싶다”고 고백하고, 니나는 드레스를 물속에 던져 버리며 “완벽한 사진” 강박을 스스로 파기한다. 마지막 시퀀스, 둘은 바다 위 부표에 올라 ‘나머지 필름’을 함께 노출시키며, 유리판 대신 손바닥으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다.
챕터 1 – “완벽한 하루”의 역설 🏰
초반부의 드라마는 니나가 집착하는 웨딩 플래너 논리를 해체하는 과정이다. 그녀는 체크리스트를 꿰뚫듯 “다크 프로테아·라이트 프로테아 각각 한 송이, 드레스 허리선 2cm 수선, 크리스털 플루트에 로즈 골드 시럽”을 외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완벽 추구는 이미 관계에 대한 불안의 다른 이름으로 기능한다. 감독은 니나의 준비 과정을 ‘플랫레이 쇼트+고스트 사운드’(카메라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그녀의 독백이 에코로 번지는 방식)로 보여 주며, ‘목표를 위한 노동’이 ‘관계를 위한 대화’를 대체했음을 암시한다. 반면 휴고는 신문 스크랩이나 모바일 메신저 기록 대신 “아날로그 필름”만을 들고 귀향하는데, 이는 완벽히 초점을 맞추기 전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삶을 상징한다. 두 인물이 예식장의 화려한 조명 대신 주차장 보안등 아래에서 재회하는 장면은 “관계의 본질은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드러난다”는 주제를 선명하게 제시한다.
챕터 2 – 도피 여행과 거울 커플들 ✈️
중반부 모리셔스 파트는 “허니문은 잔칫날이 아니라 검증의 실험실”이라는 사실을 유머와 눈물로 그려 낸다. 휴고·니나는 ‘가짜 신혼부부’ 신분 덕분에 매일 아침 리조트 측이 주는 Love Challenge―스킨십, 선물 교환, 스쿠버 워킹, 전통 세가춤 배우기―에 참여한다. 이 도식은 단순 레크리에이션을 넘어, 관계가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의식적 노력을 은유한다. 여기서 벤·마리키(‘사랑의 언어’를 못 맞추는 중년)와 폴·베치(임종을 앞둔 황혼 부부)는 니나·휴고에게 각각 “현재의 단절”과 “미래의 이별”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특히 산소호흡기를 채운 채 수중에서 손끝으로만 의사소통하는 시퀀스는, 서로의 언어를 배우지 못한 벤·마리키의 갈등을 물리적으로 체험케 함으로써 “말 없는 관계의 질식”을 시청각적으로 구현한다. 한편 리티프가 등장하며 코코넛 칵테일 파티가 순식간에 ‘공적 자존심 대결’로 변모하는 장면은, 사랑이 아닌 소유·명예·관습이 개입할 때 낭만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 준다.
챕터 3 – 불완전함을 껴안는 결심 🌊
후반부는 “완벽의 파괴”를 통해 새로운 결합을 완성한다. 베치의 병세 악화로 급히 마련된 ‘비치 사이드 결혼식’에서 니나는 자신이 몇 년간 쌓아 온 웨딩 플래너 스킬을 총동원하지만, 이번에는 🕊️ 꽃잎 대신 현지 학생들의 종이학·리조트의 대빵 대나무 조명·바다에서 건진 부표 아치 등 불완전하지만 살아 있는 재료를 쓴다. 이식된 장식 대신 현지 맥락을 존중하는 셈이다. 휴고는 니나의 드레스를 재봉틀 없이 꿰매 준 뒤 “바느질 자국이 보이더라도 이것이 우리의 역사”라고 말하고, 두 사람은 부표 위에서 미완성 필름을 카메라에 감아 서로를 포커싱한다. 리티프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그의 존재는 두 주인공에게 “관계를 지키려면 실행·의사소통·용기가 모두 필요하다”는 교훈적 그림자를 남긴다. 마지막 몽타주에서 니나·휴고는 세계 각국 아이들에게 즉석 동화를 들려주고, 사진을 찍어 ‘자기 자리 찾기 프로젝트’ 전시를 연다. “해피엔딩은 약속이 아니라 동행 과정에서 매일 갱신된다”는 메시지가 화면 전체를 관통한다.
총평 📝
<Vir Altyd>는 ‘결혼식이 파토난 로맨틱 코미디’라는 흔한 도입부를 택하지만, “이벤트적 낭만을 해체하고 일상의 지속 가능성을 실험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감독은 육각구조(니나·휴고·리티프·부모·중년커플·노부부)를 활용해 사랑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병치하고, “완벽 vs 진정성”·“소유 vs 동행”·“의식 vs 생활”이 교차하는 접점을 미학적·서사적으로 파고든다. 특히 모리셔스 파트의 🎶 세가 리듬·📷 아날로그 필름·🥥 코코넛 미학은 발리우드식 과잉 미장센과 달리, 내러티브 리듬에 기능적으로 결합돼 있다.
아쉬운 지점이 있다면, 리티프 캐릭터가 클리셰적 이기심으로만 퇴장해 “멜로 악역”의 서사를 충분히 입체화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영화가 남기는 여운은 명쾌하다. “사랑은 타이밍이 아니라 업데이트”, 그리고 “웨딩 케이크보다 중요한 것은 날마다 꺼내 먹는 작은 쿠키”라는 삶의 태도. 코로나 이후 ‘연기된 결혼식’이 늘어난 지금, <Vir Altyd>가 제안하는 관계 리브랜딩의 윤리학은 더욱 폭넓게 호소력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