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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itelka》 영화 해석 – 학생과 학부모를 조종한 한 교사의 정체

by sisamandam 2025. 4. 5.

Ucitelka
Created By DALLE3

개요

슬로바키아와 체코의 정치적 불안과 권위주의가 만연했던 1980년대, 한 학교의 교사가 개인적 권력을 어떻게 사적으로 오용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영화 《Ucitelka》(《더 티처》, 2016)는, 단순한 학급 내 이야기 이상의 깊이와 사회적 메시지를 품고 있다. 피터 야르초브스키(Petr Jarchovský)의 시나리오에 기반한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교묘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교사 드라즈데초바(Drazdechová)와 이에 침묵하거나 저항하는 학부모들과의 집단 심리 전쟁을 그린다. 특히, 학생들의 성적을 빌미로 학부모들에게 개인적 이익을 요구하며 조용히 압박하는 드라즈데초바의 캐릭터는, 단지 권위주의적 체제 속 교사 한 명이 아니라, 당시 체제 전반에 만연했던 부패와 암묵적 거래를 상징한다.

영화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교실과 학부모 모임이라는 소소한 공간에서 시작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심리전과 도덕적 갈등은 점점 더 깊은 내면의 상처와 사회 구조의 결함을 드러낸다. 교사의 부당함을 처음으로 지적한 몇몇 학부모들의 고군분투, 체제의 눈치를 보며 침묵하는 다수, 그리고 아이들이 받는 정서적 상처는 이 영화가 단순히 시대극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교육과 권력의 관계, 집단의 도덕적 책임을 묻는 작품임을 방증한다.

《Ucitelka》는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 어떻게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지를 보여주며, 그 안에서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의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교사 한 사람의 행동이 한 반 전체, 나아가 학부모들과 공동체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 이야기는 교육이라는 공간이 결코 중립적인 장소가 아니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작동 원리를 민낯으로 드러낸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이 영화는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함께,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줄거리

1983년, 체코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의 한 평범한 중학교. 새 학기 첫날, 교실에 들어온 교사 **므리아 드라즈데초바(Mária Drazdechová)**는 학생들에게 부모님의 직업을 말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단순한 자기소개처럼 보였지만, 곧 그녀가 학생들의 집안 배경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편의를 챙기려는 의도가 있음이 드러난다. 학생들의 성적을 무기 삼아, 드라즈데초바는 가정마다 다르게 다가가며 물품, 노동, 편의 제공 등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요구는 교묘하고 부드럽게 포장되어 있었지만, 응하지 않거나 협조하지 않는 학부모의 자녀는 점점 낮은 성적을 받거나 공개적인 굴욕을 당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불합리함을 견디지 못한 몇몇 학부모, 특히 쿠체라 부부와 빈더는 드라즈데초바의 권력 남용에 맞서기 위해 학교 측에 정식으로 항의하고, 학부모 회의에서 연판장을 돌린다. 하지만 드라즈데초바는 공산당 간부이자 학교 내 권력자이며, 많은 이들은 그녀의 보복을 두려워해 침묵하거나 오히려 그녀를 지지한다.

영화는 학부모 회의라는 제한된 공간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입장과 가치관이 충돌한다. 자신의 자녀를 지키기 위해 입을 다무는 자, 부당함을 외면하지 못하고 맞서는 자, 그리고 체제에 순응하며 이익을 선택하는 자들 간의 대립은 점차 첨예해진다. 그러한 가운데, 아이들은 이 어른들의 갈등과 교사의 정치적 조작 속에서 상처받고 방황하며, 교육이라는 공간이 더 이상 배움의 장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결국 드라즈데초바의 행동에 대해 정식 항의문이 접수되지만, 회의 끝에는 침묵과 순응이 승리하고, 그녀는 징계 없이 새로운 학교로 전근을 간다. 그리고 새로운 반에서, 또 다시 학생들에게 부모의 직업을 묻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는 구조적 악순환의 반복과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의 부조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말이다.

챕터1 – 교사와 권력의 시작

드라즈데초바의 첫 인사

새 학기 첫날, 브라티슬라바의 한 학교. 담임 교사로 부임한 므리아 드라즈데초바는 학생들에게 환한 미소와 따뜻한 말투로 다가간다. 겉보기엔 상냥하고 배려심 깊은 교육자로 보이는 그녀는 첫 수업에서 학생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며 부모의 직업을 말하게 한다. 이 단순한 질문은 곧 그녀가 학생들의 가정환경을 파악하여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자원을 선별하는 수단임이 드러난다. 가령, 택시 기사인 아버지를 둔 학생에게는 “언제든지 태워줄 수 있겠네”라며 은근한 부탁을 던지고, 파일럿으로 착각한 학생의 아버지에게는 “혹시 물건을 외국으로 보내줄 수 있겠느냐”고 접근한다.

드라즈데초바는 이렇게 학생들의 가정과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녀는 단순한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사정과 성향, 처지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편의를 위해 학생과 학부모를 활용하려는 전략적 접근을 펼친다. 교사로서의 공적인 권한을 바탕으로 개인적 편의를 추구하는 드라즈데초바의 이중적인 모습은 영화의 핵심 갈등을 촉발시키는 서막이 된다. 그녀의 행동은 처음에는 교묘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점차 공포와 긴장감으로 확산된다.

이러한 방식은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실상은 권력의 행사이며, 이를 인지하지 못한 학부모들은 자연스럽게 협조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전구를 고쳐주고, 누군가는 고기를 사다 주고, 어떤 이들은 아이의 성적을 위해 교사의 집안일까지 맡게 된다. 이 모든 행동은 자발적인 듯 보이나, 실상은 자녀의 미래와 안전을 담보로 한 조용한 협박이자 거래다.

첫 갈등의 조짐

하지만 모든 부모가 이에 순응하는 것은 아니다. 체계적인 불평등과 명백한 차별을 감지한 쿠체로바 부부는 딸 **단카(Danka)**의 성적이 부당하게 낮게 평가받고 있음에 의문을 품는다. 드라즈데초바는 단카에게 가족을 소개하라는 숙제를 내고, 그녀가 책 속의 내용을 그대로 외웠다는 이유로 모욕을 준다. 이는 단카의 가족이 드라즈데초바의 사적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정황과 맞물리며, 그녀의 '보복성 평가'라는 심증을 굳힌다.

이와 같은 사례는 다른 가정에서도 반복되며, 점차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혹시 나만 이런가?”라는 불신이 싹튼다. 누군가는 아이가 수업 시간에 이유 없이 무시당했다고 느끼고, 또 다른 학부모는 시험 문제를 미리 아는 학생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이는 공정하지 못한 학습 환경과 부당한 평가가 교사의 사적 감정과 요구에 좌우된다는 점을 암시한다.

결국 쿠체로바 부부는 가만히 있지 않기로 결심하고, 몇몇 학부모들과 함께 교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비공식 학부모 모임을 조직한다. 이 모임은 단순한 불만의 집합이 아니라,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체제 하에서 개인이 권력자에게 맞서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연대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첫 시도다. 그러나 체제와 권위에 맞서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드러나는 불균형

드라즈데초바의 영향력은 단지 한 교실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학교 내 공산당 세포 위원장이며, 남편은 군인이었고, 자매는 모스크바에 거주 중이다. 이 정치적 배경은 그녀가 단순한 교사가 아니라 체제의 상징적 존재로 기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학부모와 학생들, 심지어 학교장조차도 그녀의 기분을 살피며 행동하고, 잘못 건드렸다가는 아이의 진학 문제나 직장 문제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이렇게 드라즈데초바는 자신의 정체성과 시스템을 무기 삼아, 사적인 이익을 공공의 권한으로부터 빼내는 이중적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학생들은 점점 더 위축되고, 일부 아이들은 훈련과 수업 모두를 포기한 채 무기력해진다. 학부모들은 침묵과 저항 사이에서 갈등하며, 이 작은 교실은 점차 체제의 축소판처럼 변모한다.

챕터2 – 침묵과 저항 사이

학부모 회의, 진실이 드러나는 공간

학교에서 열린 비공식 학부모 회의는 마침내 드라즈데초바의 부당한 행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장이 된다. 하지만 회의는 곧 치열한 의견 충돌의 장으로 바뀐다. 교사의 요구에 협조해온 학부모들은 자녀의 성적이 우수한 현실에 만족하며 그녀를 적극 옹호하고, 반대로 드라즈데초바의 요구를 거절한 이들은 아이가 받은 불이익을 토대로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단카의 어머니 쿠체로바는, 교사가 개인적 도움을 받지 못한 자녀들에게 공개적인 모욕과 낮은 성적으로 응징해왔음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그러나 체제의 압박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집단 내에서 소외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많은 학부모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일부는 눈치를 보며 침묵하고, 일부는 드라즈데초바의 편에 서서 “그녀가 나쁘다면 왜 우리 아이는 잘 지내는가?”라는 논리를 펴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 회의는 단순히 교사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아닌, 공공의 정의와 사적 이익이 충돌하는 극적인 무대가 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며 뒤늦게 양심의 소리를 따르기로 결심한 장애인 아버지 레흐의 고백이다. 그는 드라즈데초바의 요구에 따라 아침 일찍 마트에 줄을 서고, 딸 대신 교사의 장을 대신 봐줬던 사실을 털어놓으며 “이제라도 잘못을 바로잡고 싶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회의에 참석한 이들 모두에게 도덕적 거울을 들이대는 동시에, 권력에 동조하는 것이 때로는 침묵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학생들의 내면적 균열

아이들은 어른들의 갈등과 권력 다툼 속에서 상처받는다. 단카는 더 이상 학교에 가고 싶어하지 않고, 체조 훈련도 포기한다. 필립 역시 훈련을 빼먹고 학교 생활에 무기력해지며, 아버지 빈더와의 관계는 점점 악화된다. 드라즈데초바는 성적을 빌미로 학생들에게 집안일까지 시키고, 그 과정에서 “네가 이런 일 안 하면 성적은 그대로야”라는 말을 암묵적으로 반복하며 압박한다.

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 일부는 교사의 편을 들며 ‘질서를 따르는 게 안전하다’고 여기고, 일부는 불공평함에 분노를 표출하며 공개적인 갈등을 불사한다. 특히, 시험 문제를 미리 알고 있는 헬렌카가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단카는 반복적으로 외운 내용을 말해도 무시당하는 장면은, 학생들조차 교사의 편애와 차별을 인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드라즈데초바는 단카를 공개적으로 “넌 공부에 재능이 없으니 체육이나 하라”고 말하며 모욕하고, 단카는 아이들 앞에서 완전히 무너진다.

학생들의 갈등도 깊어진다. 필립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결국 폭력 사건에까지 휘말리게 된다. 교사의 지지를 받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 사이의 위계가 학급 내에서 생기며, ‘성적’이라는 수치가 곧 교사에 대한 충성도와 동일시된다. 이로 인해 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장이 아니라, 교사에게 충성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권력 구조의 축소판이 된다.

드러나는 교사의 사생활과 위선

학부모 회의와 아이들의 증언이 쌓이면서, 드라즈데초바의 사생활과 이중성이 점점 드러난다. 그녀는 과거 남편의 죽음과 가족사를 빌미로 동정심을 유도하며, 교사로서의 권위를 부드럽고 인간적인 이미지로 포장한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학부모에게는 선물을 받고, 반찬을 얻고, 심지어 이혼한 학부모에게 접근해 감정적으로도 의존하려는 모습까지 보인다.

특히, 천문학자 리트만 박사의 아들에게 접근하며 감정적으로 흔드는 장면은 교사의 도덕적 경계를 넘어서는 위험한 행동으로 비춰진다. 그녀는 리트만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며 “당신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는 칭찬을 던지고, 이혼을 권유하며 감정적 동맹을 만들려 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단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닌, 모든 인간 관계를 계산과 목적 아래 조정하려는 권력자로서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리트만은 그녀의 본심을 눈치채고 연대를 거부한다. 필립의 아버지 빈더 역시 자녀의 성적을 더 이상 위해서만 침묵하지 않기로 결심하며, 그녀의 집을 찾아가 직접 항의한다. 이들의 반발은 드라즈데초바에게 충격을 안기지만, 동시에 체제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활용해 쉽게 위기를 모면하려는 또 다른 전략을 펼치게 만든다.

챕터3 – 진실의 무게

권력 앞의 침묵과 굴복

드라즈데초바의 행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학부모들의 항의는 공식 문서로 이어지고, 학부모 회의는 다시 한 번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하지만 회의 분위기는 예상과 달리 차갑고 침묵으로 가득하다. 많은 이들은 처음에는 용기 있게 항의에 서명했지만, 체제에 맞선다는 부담감, 그리고 교사의 권력을 상징하는 당 간부로서의 위치 때문에 하나둘씩 물러나기 시작한다. 몇몇은 “사실은 좋아서 도운 것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일부는 “내 자녀는 피해 없었다”며 침묵으로 돌아선다.

회의는 겉으로는 공정한 토론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체제 순응자들과 반대자들의 대결로 치닫는다. 하지만 이 대결은 이미 권력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다. 교장의 소극적 태도와 다수의 침묵은, 결국 ‘진실’이 아닌 ‘안전한 선택’을 선택하게 만든다. 아이들을 위한 싸움이었지만, 아이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오직 어른들의 이해관계와 체면이 남는다. 학부모 빈더는 “우리는 체제가 아니라 장사꾼에게 아이를 맡기고 있었다”고 외치지만, 그 목소리는 회의실 안에서 메아리칠 뿐이다.

결국, 항의 서명은 미미한 숫자에 그치고, 드라즈데초바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학교를 떠난다. 더 나아가, 그녀는 새로운 학교로 전근되어 또 다른 학급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이름을 말하고 부모님의 직업을 말하세요.” 이 마지막 장면은 구조적 문제와 권력의 재생산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고발자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권력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고, 부조리는 이어진다.

상처받은 아이들, 흔들리는 가족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아이들이다. 단카는 체조 훈련과 학교 모두를 포기하고, 부모와의 대화도 단절된다. 필립은 훈련을 거부하며 아버지와 격렬하게 충돌한다. 그들은 단순히 성적이나 선생님의 미움으로 상처 입은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보여주는 비겁함과 침묵, 그리고 부정의 앞에서 무력해지는 가족의 모습을 목격하며 깊은 회의감에 빠진다.

리트만 박사는 드라즈데초바가 자신의 아들 카롤을 감정적으로 조종하려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마지막까지 항의문에 서명하려 하지만 학교 커뮤니티는 그마저도 배척한다. “너 같은 반역자의 가족이 우리 자녀들과 같은 반에 있는 것도 싫다”는 말은, 그가 이 체제에서 여전히 ‘이방인’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로 인해 리트만은 아들을 다시 전학시키고, 아내가 있는 외국으로 떠나게 된다. 이는 공동체의 도덕적 실패가 개인의 탈출로 귀결되는 비극적 현실을 드러낸다.

단카, 필립, 카롤은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단카는 이후 신경학을 전공하는 의사가 되고, 필립은 레슬링을 그만두고 자동차 정비사가 되며, 카롤은 스웨덴에서 예술가로 성장한다. 이들의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 듯 보이지만, 이는 고통과 투쟁의 대가였으며, 체제 안에서 지켜지지 못한 아이들의 권리와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결말이다.

순환되는 체제의 그림자

영화는 마지막에 다시 드라즈데초바가 새 학급에서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부모의 직업을 묻는 장면으로 되돌아온다. 이는 단순한 구조 반복이 아닌, 체제 자체가 변화하지 않았음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비판하고 싸우고 저항한 이들은 소수였으며, 대부분은 살아남기 위해 침묵하거나 협조했고, 결국 그들의 행동이 드라즈데초바를 다시 새로운 곳으로 보내는 데 일조하게 된다.

이 장면은 교사 한 명이 악당이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인물을 만들어내고 용인하는 사회 구조의 비극성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체제는 변하지 않고, 권력은 이름만 바꾼 채 반복되며, 피해자들은 결국 침묵 속에 사라진다. 진실은 밝혀졌지만, 정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 “다음 드라즈데초바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총평

《Ucitelka》(2016)는 단순한 교실 드라마를 넘어, 권력의 작동 원리와 사회적 침묵의 문제를 날카롭게 고발하는 정치적 우화다. 슬로바키아 출신의 감독 얀 흐레베이크(Jan Hřebejk)와 각본가 페트르 야르초브스키(Petr Jarchovský)는 이 영화를 통해,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일상 속 권력이 얼마나 미묘하고 은밀하게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지를 정교하게 그려낸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체코슬로바키아이지만, 그 속에서 펼쳐지는 갈등과 도덕적 딜레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주인공 드라즈데초바를 연기한 즈루자 마우레리(Zuzana Mauréry)는 ‘착한 얼굴 뒤에 감춰진 교묘한 권력자’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그녀는 아이들의 성적을 무기로 학부모들을 조종하고, 때로는 동정심을 무기 삼아 자신의 권한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 미소 뒤에는 체제에 기생하는 권력의 전형적인 모습이 숨어 있다. 그녀는 결코 폭력을 사용하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강압적이고 교묘하게 사람들을 억압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어떤 인물이 악하다’는 단순한 도식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인물을 만들어낸 사회 구조와, 그 구조를 용인하거나 방관하는 다수의 책임을 함께 묻는다는 점이다. 특히 학부모 회의 장면은 연극적인 긴장감과 감정의 충돌이 집약된 장면으로, 침묵, 비겁함, 용기, 죄책감 등 인간 내면의 다양한 결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권력을 휘두르는 이는 단 한 명이지만, 그 권력을 유지시키는 데에는 수많은 침묵자들의 동조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영화의 핵심 테마다.

《Ucitelka》는 교육이라는 장소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그 안에서도 충분히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위계가 작동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결국 영화는 한 인물의 몰락이 아닌, 구조적 악순환의 반복을 보여주며 ‘진실을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간극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드라즈데초바가 또 다른 반에서 학생들을 다시 평가하기 시작하는 모습은, 변화 없는 사회에 대한 씁쓸한 경고이자, 반복되는 역사의 고리를 끊기 위해 개인이 해야 할 역할을 되묻는 질문이다.

정치적 은유와 도덕적 딜레마가 정교하게 맞물린 이 작품은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권력의 타락과 이에 맞선 소수의 용기를 기억하게 만드는 걸작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성적표 뒤에서 벌어지고 있을지 모를 침묵과 거래를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교육의 본질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만든다.